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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철군 단식순례] 9월 10일 - 부시의 목록과 국가위신, 그리고 전범 노무현
  글쓴이 철군 단식 글쓴날 2004-09-14 20:18:23 조회 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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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목록과 국가 위신, 그리고 전범 노무현
[박기범의 철군투쟁 단식일지 33] 2004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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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동화작가]


노무현 정권이 우리 국민을 모두 침략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떴다. 잠이 줄긴 준 것 같다. 요 며칠 잠을 충분히 자지 않는 것 같다고 둘레 분들한테 얘기를 좀 많이 들었는데 잠을 못자 몸이 무겁거나 하지는 않는다. 눈이 절로 떠지고, 몸을 일으킬 때 무겁거나 고단하지 않는다. 그냥 가뿐하게 일어난다. 수사님이 창을 열더니 감탄을 하며 이 냄새 좀 맡아보라 했다. 밤새 이슬 맺힌 남새 냄새, 흙냄새가 코로 해서 가슴 깊이 들어왔다. 몸이 절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 인터뷰 약속을 한 게 있어 전화기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마을길을 거닐다 보니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고, 아나운서가 묻는 말에 열심히 대답을 했다. 나는 보통 말이 너무 느린데다 말을 하면서 생각으로 뜸을 들이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특히 라디오 방송 인터뷰 같은 것을 하면 몇 마디 못하다 끝날 때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빨리 해야지, 꼭 해야 하는 얘기를 해야지 생각하면서 질문 하나 하나에 대답했다. 다른 때에는 다 하고 나서 진짜 해야 할 말을 못해 후회할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하고픈 말을 어느 정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오랜 단식을 어떻게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 말에 “노무현 정권이 우리 국민을 모두 침략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방송에다 대고 ‘노무현 정권’이라 직접 이르면서 정권의 폭력성, 부도덕성을 지적했다는 게 나름대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겨우 그것 가지고 통쾌해하다니!).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을 더 마을길을 걸었다. 길 바로 옆으로 사과 과수원이 있다. 정말 빨간 사과가 아주 탐스럽게 익었다. 한 입 깨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절로 들었다. 밤나무마다 막 벌어지고 있는 밤송이들이 매달렸다. 날밤으로도 얼마나 맛이 있을까, 찌어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을까. 자꾸만 먹는 생각이다. 오늘따라. 이라크에 지낼 때도 과일을 보면 그렇게 반가웠다. 사과, 그것에서는 노란연둣빛이 나는 아이 주먹만한 사과를 팔았다. 우리 사과 같은 말은 나지 않았다. 아, 맞다. 그래서 한국에 나왔다가 요르단으로 해서 다시 이라크로 들어가던 때 이라크에 있던 팀원 한 사람이 사과 좀 사다 달라고, 빨갛고 예쁜 사과 좀 사다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르단(아주 서구화 되어 있는 중동 국가)에 있는 마트에 가서 빨간 사과를 샀지. 예쁘고 빨간 알을 하나하나 고르며.

부시의 목록, 국가 위신

어제에야 드디어 <이라크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과 <이라크 파견부대 철군 촉구 결의안>이 국회 국방위에서 다루었다. 자이툰 부대가 떠나기 전, 두 달 전부터 올린 안, 의원 50명 뿐 아니라 청원운동에 참여한 10만 국민의 이름으로 함께 올린 이 안은 지난 국회 때에는 아예 상임위에서조차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선발대를 파병했고, 본진까지 파병을 순차적으로 파병을 하고 있는 이제야 검토를 하더니 결국은 국방위 안에 있는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버리면서 사실상 기각을 해 버렸다. 이 안을 낸 의원들의 한 얘기를 살펴보면 본회의에 올라가서 부결이 되어도 좋다, 표결이라도 시켜 달라, 부결이라도 시켜달라고까지 말을 했다지만 그러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국방부에서 하는 얘기나 파병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하는 얘기들은 한결 같이 ‘국제사회의 신뢰’니 ‘국가 위신’을 들먹이면서 파병을 하자고 주장을 했다. 지금 거의 모든 파병국들이 군대를 철수하고 있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 도무지 무슨 ‘국제사회의 신뢰’, ‘국가 위신’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반면에 코스타리카라는 나라에서 보인 태도를 보니 정말 내가 사는 나라 정권은, 이 나라 국회는 도대체 왜 이렇게도 엉망인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이던가? 부시가 이라크전쟁에 파병한 나라를 하나하나 들면서 동맹국이라 이야기한 일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면서 한국을 빼놓은 것.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한 나라인 한국을, 그 놈의 ‘한미동맹’을 받들며 알아서 설설 기면서 대규모 군대까지 보낸 이 나라를 말이다. 여기에 정말 기가 찬 것은 부시가 하나하나 불러준 충실한 꼬붕의 명단에 이 나라가 빠졌다 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거다.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기막힌 일을 벌이고 있을 때 남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에는 오히려 부시의 동맹국 목록에 들었다고 해서 오히려 그 목록에서 빼 달라고 했다는 거다. 코스타리카도 비록 파병을 하기는 했지만 이 전쟁의 본질이 온통 거짓에 바탕을 둔 침략전쟁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철군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전쟁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있다. ‘국제사회의 신뢰’라고? ‘국가 위신’이라고? 깡패 나라의 꼬붕 목록에서 빠졌다고 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한국, 알아서 설설 기면서 군대를 더 보내려고 하는 한국과 부시의 동맹국 거론을 불쾌해 하면서 철군을 준비하는 코스타리카 두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정말 위신을 세우고 있나? 과연 어느 나라가 진정한 신뢰를 얻고 있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창피하고 화가 나고 슬픈 일이다.

"현재 파병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뒤꽁무니에 대고 (파병) 중단을 공식 거론하는 자체가 국가 신인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열린우리당 조성태 의원이 했다는 말이다.

"즉각 철수하라든지 하는 것은 장병들의 사기와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신만 떨어뜨린다" -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이 했다는 말.

"헌법재판소 결정에 동의하며 코스타리카를 연합군 목록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할 것, 코스타리카는 테러에 반대하고 독재에 반대할 뿐"- 아벨 파체코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말.

살고 싶다!

9월 10일, 나는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허나 이경해 라는 이름은 기억한다. 지난 해 멕시코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 이경해 씨가 죽어 한 해 되는 날이 마침 오늘이라 했다. 올 연말 쌀 개방 협상을 앞두고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한 운동 또한 농민들을 중심으로 해서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전국에서 쌀 개방 반대를 이야기하는 농민대회가 있다. 함양에 머물고 있는 단식평화순례단은 함양 읍내에 나가 쌀 개방 반대 운동을 하는 농민들에게 힘을 실어드리기로 했다.

함양 읍까지는 차를 타고 삼십 분 정도. 읍내는 조그맣고 아담하다. 내가 사는 울진읍내보다야 조금 큰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닮은 것도 같았다. 농협이 하나 서 있고, 그 건너편에 롯데리아가 2층으로 있다. 농협 앞에서는 벌써 농협 노동조합원들이 가판과 피켓, 서명 종이들을 들고 나와 열심히 선전전을 하고 있다. 가서 보니 내가 우리 일정을 잘못 알고 있었다. 쌀 개방 반대 선전전은 일곱 시까지 하고 단식순례단은 함양 시민 연대라는 곳과 함께 작은 집회, 작은 공연을 그 뒤에 이어서 하기로 한 거다. 바로 이어져서 하는 거니 함께 하는 거와 크게 다를 바야 없지만 말이다. 쌀 개방 반대 선전전을 지켜보면서 벽에 늘어놓은 피켓 선전물들을 하나하나 살펴 읽어보았다. 쌀을 지켜야 하는 까닭, 쌀 개방을 했을 때 닥쳐올 재난,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 정도 따위들을 알기 쉽게 일러놓은 것들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3할이 채 되지 않는다. 그 나마 지금까지는 쌀을 지키고 있느라 그 3할이 유지되었지, 쌀마저 개방하고 나면 모든 식량을 외국에 기대야 하는 날이 멀지 않다. 그랬을 때 쌀값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 값은 세 배, 다섯 배 걷잡을 수 없이 뛰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설마, 설마 하는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곧 식량이 무기가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식량을 스스로 거둘 수 없는 나라에 대해서는 따로 미사일을 쏘지 않아도 식량 수출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무서운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정권과 자본은 농산물을 내주어야만 공산품 수출을 더 할 수 있다고, 농산물을 내준 것 이상으로 제조업 수출로 만회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댄다. 실제로 올 1월 기꺼이 국회 비준을 통과시켜 체결하고 만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결과 농산물은 엄청나게 수입을 하게 되었지만 제조업 수출은 오히려 지지부진, 그 거짓말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쌀까지 내준다고? 선전물을 보다가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고 크게 놀랐다. 그나마 지난 번 한-칠레 자유무혁협정은 협상결과에 대한 국회의 동의 절차가 있었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쌀 개방 협상에 대해서는 어떤 제동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파병이라는 그 엄청난 범죄를 스리슬쩍 저지르듯이 이러다가는 쌀 개방 또한 어물쩡 해버릴지 모를 일이다.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제발 우리 농업을 지키자고 외쳐도 이 나라 정권은 꿈쩍없다. 노동자가 침략전쟁의 결과로 무참히 살해될 위험에 처해도 이 나라 정권은 꿈쩍없다. 침략군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국민이 죽으며 절규해도 그대로 보내는 나라, 농업 시장을 내주겠다고 생각하면 농민이 목숨을 걸고 반대해도 다 내주는 나라. 도무지 이 나라 정권에게 국민이란 없다. 아니, 있다면 자신들이 군림하는 대로, 자신들에게 운명을 맡긴 채 살아야 하는 소모품이자 부속품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해 전선을 긋고 싸워야 하는 까닭은 아주 간단하다. 정권이 먼저 이 나라 국민에게 적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권은 계속해서 민중들을 죽이고 있다. 침략전쟁터에는 젊은이들을 팔아먹고, 쌀마저 개방하려 하면서 우리 농업, 식량마저 다 팔아먹으려 한다. 우리가 지금 침략전쟁에 반대하며 철군 싸움을 하는 까닭도, 쌀 개방 협상에 반대해서 식량주권을 지키자는 것도 결국은 모두 이 한 마디이다. 우리 목숨을 제발 그만 팔아먹어라, 우리는 살고 싶다!

폭격소리

쌀 개방 반대 선전전을 마치고 그 자리에 순례단 공연을 위해 준비를 했다. 한 쪽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끔 마이크 대를 설치했고, 한 쪽에는 스크린을 걸고 영상물 상영을 준비했다. 커다란 스피커를 내리고, 피켓과 걸개를 내다 붙이고. 그렇게 준비를 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영상물을 틀었다. 콰과과광. 영상물은 지난 3월 바그다드 시내의 공습, 폭격 소리부터 시작했다. 폭격, 폭격, 죽는 아이, 피가 터진 사람, 애원하는 사람, 폭격, 폭격…….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소름이 돋았다. 눈길을 화면에서 뗄 수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그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내다보며 영상물을 보았다. 2003년 3월 20일 새벽 첫 공습 소식을 들었을 때 느끼던 충격, 그리고 밤마다 건물이 흔들리도록 폭격소리가 진동을 하던 그 해 4월. 나는 7층 방에서 지내다가 더는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그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기어 지하 방공호로 내려갔다. 앞이 보이지 않던 계단을 더듬더듬 기다 시피 하며 내려가는 사이에도 지금 머리 위로 미사일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이 건물로 폭격 날아오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벌벌벌 떨었다. 그 때 듣던 폭격 소리, 그 소리가 영상물 음향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는 한 동안 잊고 있던 소리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이제는 한국에 와 있기 때문이지, 텔레비전을 켜도 뉴스에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지, 그 소리 자체가 멎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폭격 소리는 잦아지고 있고, 그 폭격이 겨냥하는 자리는 더 많은 민간인, 아이들, 여자와 노인이 있는 곳으로 맞추어져 오고 있다. 당시, 지난 해 삼사월의 전쟁 때에는 이 정도로 노골적인 민간인 살상은 있지 않았다. 당시에는 침략군들이 어떻게든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내세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때였기 때문에, 테러에 대한 전쟁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거짓말이라도 그럴싸하게 하고 싶던 때였기 때문에 노골적인 민간인 공습은 없었다. 후세인 궁과 관공서, 군사 시설부터 폭격의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그 때도 전혀 민간인 폭격, 주택가에 대한 폭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 때 싸담 후세인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싸담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싶으면 민간인이 사는 주택 지역이라도 미사일을 쏘곤 했다. 그리고는 그것은 잘못 쏜 것, 오폭이었다고 둘러대면서.) 이성을 잃기야 그 때야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지금은 정말 저 침략군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무차별로 폭격을 쏟아 붓는다. 나자프에 사는 사람들은 집 바깥으로 한 발짝만 나오면 전선이라고, 대문 바깥이 바로 전선이라고 말을 했다. 도시 둘레 곳곳을 지키는 점령군의 저격수들은 무언가 꿈틀대는 것만 있어도 바로 쏘아죽이도록 명령을 받았다. 물이 끊기고 전기도 끊긴 상태로 사흘, 일주일. 하지만 사람들은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 나가기만 하면 그곳이 바로 전선,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저격수에게 표적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나자프와 팔루자, 사드르 시티 같은 곳에서 벌이고 있는 점령군의 작전이다. 다 죽이겠다는 것, 굶어 죽게 하든지 총으로 쏘아죽이던지 모두 죽이고 말겠다는 것. 엊그제 팔루자와 사드르 시티에 쏟아 부운 융단폭격, 그곳 또한 무기 한 정 없는 민간인들이 사는 곳이었다. 점령군은 거리낌 없이 퍼부어대고 있고, 죽이고 있다. 지난 해 4월 내가 방공호 속에서 듣던 것보다 더한 폭격 소리들이 지금은 민간인들이 사는 마을로 무차별 쏟아지고 있다. 무섭다.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폭격이 있었고,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나 뿐 아니라 함양 읍내를 지나다 발길을 멈춘 사람들 모두 그 생생한 영상화면 앞에서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분명하고 안타까운 건 그 화면에서 보이는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더욱 집요하고 잔악하게 벌어지고 있다. 물론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자막 글자로 써 있듯이 ‘2003년 4월 7일’의 장면이지만 저 똑같은 일이 2004년 9월 8일, 9일, 10일……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팔이 잘려나가고 다리가 으깨어진 저 아이들의 절규도, 온 몸에 파편이 박혀 오열하는 저 여자와 남자의 괴로워하는 소리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그 때보다 더 많은 아이가, 더 많은 여자와 남자가 피가 터지고, 뼈가 으깨어져 죽어가고 있다.

비 오는 함양 읍내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했는데 집회를 시작할 무렵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평화바람의 보리 님과 이주미 선생님이 오늘 낮 동안 연습한 동요 <사람이나 새나>와 <큰길로 가겠다>를 함께 불렀다. 워낙에는 현이와 보민이도 함께 부르려고 했는데 막상 노래부를 차례가 되었을 때 아이들은 땅콩 빵에 정신이 팔려서 두 분만 부른 것이다. 사실 얼마 전부터 보리 님은 이 ‘단식순례’라는 것을 하고 다니는 속에서 기존 평화바람이 해온 신바람 나는 공연을 한다는 것에 고민을 안고 있었다. 단식이라는 것은 뭐랄까 엄숙하고 비장미 넘치는 일인데 그런 단식 순례의 길에 흥이 나는 노래를 하기도 어렵고, 한다 해도 그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울진 공연 뒤로는 아직 다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낮 이주미 선생님 댁에서 아이들 노래를 듣다가 그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습해서 나온 곡이었다. 죽은 목숨을 생각하며 마음이 한껏 가라앉게 되는 노래.


사람이나 새나 (어린이 시, 백창우 곡)

사람이나 새나 죽으면 불쌍하다
우리가 새를 죽여도 불쌍하고
새가 우리를 죽여도 불쌍하다
사람이나 새나 새나 사람이나
죽으면 불쌍하다

집회를 하면 주로 앞 순서에 내가 얘기를 하고, 끝날 즈음 수사님이 말씀을 하곤 한다. 내가 이야기해야 할 차례, 말 잘하는 선수가 못되기 때문에 마이크 잡을 차례가 되면 늘 어느 만큼씩 긴장이 된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으로 챙겨본다 하지만 앞에 나갔다 들어오면 늘 해야 할 말을 빠뜨린 것 같고, 생각지 않던 쪽으로 말이 흐른 것 같고 그렇다. 그래도 벌써 일주일 가까이 다니면서 말을 하고 내려오고 그랬으니 그 사이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다 어제 일기에 쓴 것처럼 철군을 해야 합니다 하는 얘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철군을 하기 위해 이렇게 하면 좋겠다 하는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으로 준비했다. “지난 해 전쟁이 시작된 때부터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우리 군대를 보내지 말라는 싸움을 해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하기도 했고, 나라 곳곳에서 촛불을 들기도, 국회 앞으로 한 데 모여 방패에 찍히며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파병을 철회하라고 우리 국민들의 이름을 모아 직접 국회에 청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권은 여전히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 철군을 이루는 것을 진정 원한다면 꿈적도 않는 이 정권에 분명하게 싸움을 걸어야 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지난 일 년 반을 보았듯이 항의하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철군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서명운동도, 촛불시위도, 인간 띠잇기도, 청원운동도 무엇 하나 정권의 고집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항의나 요구가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그네들을 심판해야 합니다. 벌써 나라밖에서는 전범에 대한 민중재판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운동이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올 9월부터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기소인이 되어 법정을 만드는 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적어도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이 법정의 기소인단이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아마 이 자리에는 일부러 오신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뿐 아니라 함께 하시는 모임마다, 둘레에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다 같이 노무현과 부시, 블레어를 법정에 세우는 기소인단이 되어주십시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만큼 했다고, 더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은 끝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 원하는 마음을 하나의 행동으로 모을 수만 있다면, 이 전쟁은 끝낼 수 있습니다. ……”

빗줄기는 굵어졌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있던 분들은 그 빗속에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함양에 계신 신부님의 말씀이 이어졌고, 함양 시민 한 분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수사님 말씀. 빗줄기는 갈수록 더욱 굵어졌다. 우산도 비옷도 없이 그대로 비를 맞았다. 몸이 조금 춥기는 했지만 함께 비를 맞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분위기 안에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함양읍 동문 사거리,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졌다. 얼마 되지 않는 읍민들이 함께 했지만 뜨거운 마음을 함께 했다.


깊은 잠

비가 오는 날에는 몸이 더 무겁고 가라앉는다 하더니 정말 그랬다. 여태 몸이 무겁다, 힘들다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읍내에 나갔다 들어와서는 처음으로 그런 느낌이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었으면……. 더운 물을 부탁해 몸을 씻었다. 일지를 쓸까 하고 컴퓨터를 꺼내었지만 몸이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철군 단식순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철군 단식순례] 9월 9일 - 기소인단이 되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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