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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철군 단식순례] 9월12-13일, 바그다드의 하늘
  글쓴이 철군 단식 글쓴날 2004-09-14 20:28:28 조회 2446
  첨부파일 0912-9day22.jpg (44242 Bytes)

[단식일지 35, 36] 바그다드의 하늘 (2004년 9월 12, 13일)




여수, 전쟁반대 이야기 (2004.09.12)


여수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여름 바그다드 함락으로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국으로 전쟁 이야기를 하러 다니던 때 처음 다녀갔다. 그 때는 함께 다니는 팀도 없었고 혼자 손수 운전을 해서 다녔는데 지금보다 일정이 더 빡빡해서 열심히 자동차를 몰고 다음 장소로 움직여도 강연 시간에 늦곤 했다. 여수에도 늦어 도착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세 시간 가까운 이야기, 이야기 한 번 하고 나면 몸에 기운이 다 빠지곤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따로 자리를 마련해준 분들하고 밥 한 끼 하지 못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 그 때는 그렇게 전쟁 이야기를 가지고 몇 시간 다녀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왔다. 이번에도 그 때처럼 전국으로 도는 길에 들른 길이고, 그 때처럼 전쟁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다. 지난번과 다르다면 이번에는 밥을 먹지 않는 몸으로 왔다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식구들과 같이 왔다는 것. 여수 바다도 참 예쁘다고 하던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조금 시간이 한가하다면 바다에 나가봤으면 했다. 몸 뿐 아니라 머리도, 마음도 쉬게 하면서 한 몇 시간만이라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았으면 좋겠구나. 그저 잠깐 든 생각이었다. 일정이 그리 만만치 않다.

제2청사 앞에서 여수 순례 준비를 해주신 김진영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 순례단이 전체 일정을 짜면서 한 애기가 전국을 두루 다니되 대도시를 피해 작은 도시 또는 작은 풀뿌리의 모임들을 찾아다니자는 거였다. 그래서 짠 것이 지금껏 지나온 울진 평화모임과 안동, 함양 녹색대학, 남원 실상사인 거고 이제 여수로 왔다. 전라남도에서는 어느 곳이 좋겠는지를 의논할 때 내가 여수로 하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수에 이렇다 할만한 아는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많이 알지도 못하는데 왠지 여수라면 우리 순례단과 마음을 함께 나눌 이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껏해야 지난 해 강연을 한 번 하고 돌아간 것에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진영 선생님과 몇 차례 더 연락을 나누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잠정으로 여수에 제안해 보자고 했고, 그 일을 내가 맡아 김진영 선생님께 우리 순례에 대해 말씀을 드리며 제안한 거였다. 어떻게 보면 일거리를 안기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그것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큰 짐을 지우는 일일 수도 있는데 김진영 선생님은 오히려 반기고 고마워하면서 여수 순례에 대한 준비를 해주셨다. 여수에 들어와 김진영 선생님을 만나 먼저 밥집으로 움직였고, 밥을 먹고 난 뒤 순례단원들은 그 앞에 있는 숙박시설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꼬박 이틀 째 이곳 분들이 마련해준 그곳 밥집과 숙박시설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수사님과 나는 잠자리를 김진영 선생님 댁으로 따로 두었다.)





총을 내리고, 풍선을 띄워라!


여수에 도착한 첫날, 처음 계획은 네 시부터 바깥에서 작은 공연을 하자는 거였는데 비가 내렸다 말았다 영 불안했다. 공연을 하려면 평화바람 꽃마차에서 내릴 음향이며 여러 가지 장치를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급하게 실내 공간으로 장소를 옮겼다. 여수 YMCA 청소년 수련관. 우리 또래가 청소년일 때에는 이런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나는 요즘 간혹 이런 공간에 들어오게 되면 무척이나 신기하고 부러운 생각이 든다. 정말 아이들이 자유롭게 저희가 하고 싶은 취미를 찾아 문화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수련관의 들머리부터 아주 자유로워 보이고, 싱그러운 느낌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어울리고 웃고 떠들었다. 우리가 모임을 가질 ‘놀이마당’은 수련관의 지하에 있는 강당. 지하에는 강당 말고 두 개의 연습장이 있었는데 하나는 방음이 아주 잘 된 풍물 연습장이고 다른 하나는 벽 한 면이 커다란 거울로 되어 있는 춤 연습장이다. 역시 나는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면서 우와, 우와 하는데 김진영 선생님 말씀이 이런 공간은 지금도 턱없이 모자란다 하신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까 생각 없이 우와, 우와 하기만 하던 내 모습이 참 어리석어 보였다. 그렇지, 정말. 이런 것을 보았으면 신기해하고 놀라할 것이 아니라 이런 걸 보면서 신기해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라는 걸 느꼈어야 했다. 전혀 신기해해야 할 것이 아니라 어느 고장 어느 마을이나 쉽게 발길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들어간 수련관의 ‘놀이마당’이라는 강당. 문을 불 꺼진 강당 안에 수십 개의 촛불이 두 줄로 늘어서서 길을 만들고 있고, 안 쪽에는 흰 풍선이 하나 가득했다. 스스로 인터넷 방송국을 꾸린 아이들이 쓰고 나간 뒤인데 아마 그렇게 꾸며 놓고 무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치운다 하는 걸 그냥 두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두 줄로 길게 세운 초만 치우고 나머지는 그냥 두었다. 그리고 그 안에 수사님이 청와대에 있을 때 쓰던 걸개, 울진 아이들의 그림으로 만든 걸개 들을 널고, 피켓들을 벽에 붙여 함께 이야기 나눌 공간을 꾸몄다. 그러는 사이 한 분, 두 분 자리를 채웠고, 점점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오는 아이도 많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강당 안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먼저 동영상을 보았는데 그건 나도 이번에 처음 보는 거였다. 지난 가을 수사님이 몇 사람과 함께 다시 이라크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찍은 필름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바그다드 시내의 정경, 그리고 내가 사귄 그 아이들과 꼭 닮은 아이들. 몇 시간 걸려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당장이라도 다시 가서 만나고 오고 싶다. 저 때만 해도, 아직 저 때만 해도 민간인 마을에 대고 무차별 폭격은 하지 않았는데, 적어도 지금처럼 잔악하지는 않았는데……. 화면 속 이야기는 수사님 일행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의 장면으로 이어졌다. 대학로, 소망나무 터. 파니가 노래하는 모습이 나왔고, 색종이 잎사귀마다 평화를 바라는 소망들이 비추어졌다. 그리고 그 겨울 그렇게 국회 앞으로 따라다니며 싸우던 날들.

영상을 보고 난 뒤에 나가 인사를 했다. 오늘은 전범 민중재판 운동을 준비하는 손상렬 님이 내려와 있었고, 단식자 발언 뒤에 바로 그 분이 전범재판에 대해 다시 소개를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어쨌든 우리 순례가 전범 민중재판의 흐름을 으로 이어가게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발언을 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는 아무리 단식자 발언 순서에 나가 짧은 시간 동안 힘주어 얘기를 한다 하더라도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런데 견주어 오늘은 다른 부담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부터 발기인이 되어 주십시오. 지금도 죄 없는 이라크 인들을 하룻밤 새 이삼십 명씩 죽이고 있는 이 전쟁을 하는 전범, 우리를 침략자로 만들어버린 전범, 노무현 정권을 전범으로 민중법정에 올리는 데에 기소인단이 되어주십시오.

울진 첫날 보고 그 동안 못 보던 문정현 신부님의 노래와 너스레가 있는 절절한 체험의 강연. 그리고 시간에 늦어 막 도착한 별음자리표 아저씨. 아저씨는 <장작불>로 시작해 <앗쌀람 알라이쿰>, <총을 내려라!> 들을 불렀다. 강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앗쌀람 알라이쿰의 후렴과 총을 내려라의 후렴구를 함께 어울려 불렀다. 어른들, 아이들 할 것 없이 함께 손뼉을 치면서 아주 흥겹게 따라했다. 아이들은 더 앉아 있지 못하고 뛰어다녔다. 곧 풍선이 날리고, 발에 걸리고 강당 안은 풍선 밭이 되었다. 별음자리 아저씨의 노래에 맞춘 ‘총을 내려’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전범 민중재판의 발기인으로 함께 할 분들의 서명 종이가 돌아다녔다. 그것도 준비된 게 없어 흰 백지에 손으로 써서 만든 엉성한 종이였지만 순례를 다니며 발기인이 되겠다 하는 분들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벌써부터 그렇게 발기인단 모집에 대한 가입서든, 전범 민중재판에 대한 내용이나 일정에 대한 전단지든, 아니면 이러저러한 선전 들이 함께 되었어야 했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것을 시작이라 생각하면, 시작이야 언제나 아주 작고 미약하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초라하게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함께 아이가 된 듯한 어른들은 계속 풍선과 함께 뛰어다녔고, 총을 내리라는 노랫소리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총을 내려라!








여수 YMCA 청소년 수련관에서 함께한 단식평화순례.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2004.09.13)


오전부터 여러 일정이 이어졌다. 아홉 시에는 문정현 신부님이 중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 약속, 열 시에는 김재복 수사님이 여수의 이런저런 여성 모임 회원들과 만나는 약속, 그리고 열한 시에는 내가 초등학교 교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여기에는 다 따라 다니지 못하고 약속한 사람만 움직였다. 가장 바쁜 건 세 사람을 차에 태우고 다니며 안내하는 김진영 선생님이었다. 한 사람을 안내하고 오면 바로 다음 약속, 또 다음 약속. 나는 학교에 갈 시간을 기다리면서 선생님네 아이 책상 책꽂이에 있는 동화책 몇 권을 읽었다.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못보고 있던 책들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구두룬 파운제방의 단편 동화집. 여섯 편이던가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인데 하나도 뺄 것 없이 다 좋았다. 읽고 나면 마음에 어떤 물이 드는 것 같은 느낌. 서툰 교훈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만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진리. 몇 편의 단편 가운데에서도 <디륵은 인도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지?>는 내가 요사이 자꾸만 빠져들고 있는 생각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5학년 교실, 아이들을 만나 교탁 앞에 섰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야 할지 어려웠다. 아직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이 시간에 어떤 일로 해서 누가 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랬으니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아저씨는 지금 김재복 수사님이라는 분하고 같이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고 있어. 밥을 먹지 않으면서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거야. 김재복 수사님은 오늘로 오십일 째, 아저씨는 삼십육일 째. 으응, 그 까닭은 친구들이 생각나서이기도 하고, 너무너무 슬퍼서이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꼭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야. 그게 뭐냐면…….” 이렇게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곳 이라크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도 했고, 기어이 침략 군대를 보낸 우리나라의 모습도 이야기했고, 지금도 날마다 아주 무섭게 죽이고 죽이는 그곳의 일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고 난 뒤 아이들과 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같이 전쟁을 막자고? 파병을 철회시키자고? 아이들과 나눌 것, 아이들과 함께 되돌아볼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되묻는 거라고 생각했다. <디륵이 인도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지?> 하는 동화의 제목처럼 ‘우리가 이라크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지?’, ‘우리가 북한 어린이와……’, ‘우리가 결식 아이들과……’, ‘우리가 노숙자 아저씨들과……’. 그 관계를 묻는 것. 작품을 읽어주는데 삼십 분 가까이 걸렸다. 얼마쯤 읽어가면서부터 기운이 달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걸 느꼈다. 한 줄 한 줄 읽는 게 힘이 들었다. 새 문장을 들어갈 때마다 배에 힘을 주면서 힘을 주어 읽었다. 큰 소리를 내어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건 둘째 치고 들리게라도 읽으려면 절로 배에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 가지 바람이라면 오늘 만난 5학년 교실의 아이들에게 디륵이 느끼고 깨닫게 된 것이 조그만 질문의 씨앗이라도 되어 남았으면 하는 거다. 진지하던 아이들의 눈빛, 그것을 나는 희망으로 믿고 싶다.





대낮, 아파치 헬기의 기총사격


어제 또다시 바그다드의 하이파 거리라는 큰 길 위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대낮에 아파치 헬기가 낮게 떠다니면서 사람들을 향해 기총사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수가 없다. 영화라도 그럴 수가 없다. 서울 하늘에, 종로 거리 위로 헬기가 떠다니면서 길 위의 사람들에게 총알을 퍼부어댄다면, 아니, 바로 이곳 여수의 여천과 구여수를 잇는 큰 길 위에서 헬기가 총질을 퍼부어대는 것과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오늘은 날이 좋아 오랜만에 꽃마차를 거리에 세우고 공연을 가졌다. 그러한 거리,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위로 군대의 헬기가 날아와 우리에게 총질을 한 것이다. 이라크의 현실은 우리가 느긋해할 수 없이 급박하다. 목숨에는 그 어떤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신문 기사를 볼 때마다 정말 절망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어서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그게 얼굴까지 올라가면 금세라도 울음이 되어 터질 것 같아 참는다. 굶는 날이 길어지면서 그런 소식들을 보면 더욱 힘이 든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바로 한 달 전 나자프에서 그 엄청난 학살을 본 뒤, 계속해서 죽이고 있다. 닷새 전 팔루자에서 한밤 중 융단폭격이 있다 해서 끔찍해하며 놀랐는데 어제 그것도 대낮에 하늘을 떠다니던 헬기가 사람들을 무차별로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만 최소 37명, 팔루자 16명, 어제 하루만 모두 110명의 목숨이 잃었다. 죽어가는 목숨을 생각하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을 수가 없는데 철군 운동의 돌파구로 삼던 전범재판 운동은 아직 그만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느긋할 수는 없지만 급하게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자꾸만 마음에 대고 되뇌였다. 그렇게 나 스스로 위안을 찾고, 위안을 받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가슴팍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견디기가 힘들다. 그런 절망을 한 번씩 느끼고 나면 몸의 기운도 한 순간 다 달아나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전범으로 민중재판에 세우기 위한 기소인단이 되겠다고 서명을 하고 있다.








오늘은 며칠 내리던 비가 개고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었다. 아침에는 이 하늘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바그다드에 처음 들어간 날, 함께 들어갔던 동료들은 모두 그 예쁘던 하늘빛에 놀라곤 했다. 아, 저렇게 예쁜 하늘 아래로 정말 미사일이 떨어질까, 저 하늘에 대고 폭탄을 쏘아댈까? 바그다드 하늘에는 지금 코브라 헬기가 날고 있다. 멀리서 쏘는 미사일, 폭탄은 물론이고, 사람들 머리 위로 낮게 나는 아파치 헬기가 무차별로 총알을 퍼붓고 있다. 지금 이곳 가을 하늘만큼이나 예쁜 바그다드의 하늘에는 말이다.




[철군 단식일지] 9월 16-17일,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철군 단식순례] 내가 저지르는 폭력, 그리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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