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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철군 단식일지] 9월 16-17일,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글쓴이 철군단식 글쓴날 2004-10-05 16:19:44 조회 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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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 [박기범의 철군투쟁 단식일지 39, 40] 2004년 9월 16일,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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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동화작가]

춘천가는 길 (2004년 9월 16일)

어린이신문에 이어 쓰는 글을 쓰느라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오늘부터 춘천, 시흥, 인천, 임진각, 서울, 청와대로 날마다 옮겨 다니는 일정을 생각하면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나서 자고 일어나 원고를 보낸 뒤, 옷가지며 짐가방을 챙기고 나니까 어느 새 기차 시간이 되었다. 순례단원들은 어제 하루를 합정동에 있는 수도원에서 묵고 거기에서 순례단 봉고로 출발을 하는데 나는 다시 합정동으로 되돌아갔다가 그 차를 타고 갈 것 없이 바로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간으로 보아도 그게 훨씬 덜 들고, 힘이 드는 걸로 봐서도 그게 훨씬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가 타고 싶었다. 그런데 이러다 저러다 보니 어느 새 기차 시간에 삼십 분도 남지 않았다. 짐을 짊어지고 부랴부랴 나가는데 이렇게 늦는 날은 흔하던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큰길까지 나가서야 택시를 잡아탔다. “청량리역까지 가주세요, 거기 길 건너편 말고 미주 아파트 쪽으로 돌아들어가서 계단 앞까지 들어가 주세요.” 자동차에 달린 시계를 보니 간당간당하다. 그런데 자꾸만 빨간 신호등에 걸린다.

기사 아저씨가 어디를 가느냐고, 무엇하러 가느냐고 하는 걸 물어서 이러이러한 일로 다니고 있다고, 이번에는 춘천에 가는 길이라고 대답해 드렸다. 아저씨도 내 마음이 되어 어떻게든 기차 시간에 댈 수 있게 가느라 애를 썼다. 야속하게도 자꾸만 신호에 걸린다. 청량리 역 계단 앞에 내린 건 기차 시간에 꼭 2분 전. 미리 손에 쥔 돈을 아저씨에게 건네고 짐을 내리는데 아저씨가 안 받겠단다, 그냥 가란다. 파병철회하는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그냥 모셔다 주는 거라 생각해 달라신다. 시간이 없으니 사양을 하면서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는 노릇, 고맙습니다 하고 크게 인사를 드리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다리에 힘이 없다. 마음은 뛰는데 다리는 겨우겨우 층계를 오른다. 아직 안 떠났다 보다. 삐리리리리, 곧 출발을 한다는 소리는 들리는데 계단을 내려가서도 또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고, 갈 길이 멀다. 나 말고도 기차 시간에 겨우 맞춰 온 사람들이 내 앞으로 막 뛰어간다. 그런데 우스운 게 뾰족구두를 신은 아가씨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도 나보다 다 걸음이 빠르다. 내가 쫓아갈 수가 없다. 마음은 달려가고 있는데 걸음은 아주 무겁다. 왼쪽으로 맨 가방을 오른쪽으로 옮기는데 팔뚝에 쥐가 올라 가방을 떨어뜨렸다. 여러 가지한다. 휴우, 그러다가야 겨우 올라탔다. 기차가 움직였다.


대동제 기간이던 춘천교대에서 가진 단식순레단 강연회



봄내에서 평화를

춘천을 순례지로 하면서 순례지 일정 준비를 부탁한 곳은 ‘강아지똥’이라는 춘천교대 어린이문학 동아리였다. 그래서 실제 준비는 강아지똥 학생들과 더불어 춘천가톨릭청년 모임이 애를 많이 쓰면서 춘천교대 총학생회, 춘천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모임이 함께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야 강아지똥 모임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김상욱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믿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남춘천에 도착하니 김상욱 선생님과 강아지똥 학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역에서 학교. 마침 춘천교대는 대동제 기간이다.

학교 안에 펼침막이며 운동장에 쳐 놓은 천막들, 여러 가지 선전물들이 알록달록하게 화사한 느낌이었다. 곧 순례단도 학교 안으로 도착하게 되었고 잠시 인사를 나누며 하루 일정을 이야기하고 나니 바로 신부님의 간담회 시간이 되었다. 그 사이에 한 수녀님이 김재복 수사님을 찾아 오셨는데 아아, 그 수녀님은 김재복 수사님의 친동생 분이었다. 하지만 수사님은 서울에서 조금 더 쉬다가 출발을 한다. 어제 공주에서 올라온 뒤로 몸이 부쩍 좋지 않아졌기 때문이라 했다. 신부님은 간담회를 하시러, 그리고 평화바람도 그 간담회에 바로 이어질 시내 켐페인과 미군부대 앞 캠페인을 준비하느라 함께 그곳 장소로 옮겨갔다. 나는 같은 시간에 춘천교대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강연이 준비되어 있어서 학교에 남아 기다렸다. 김상욱 선생님 연구실에 앉아 기다리는데 가평에서 김환영 선생님이 왔다. 원주의 전마리아 선생님이 함께 오셨다. 집에서 손수 담아 두 해를 묵혔다는 효소에 이것저것 해서 아이스박스로 하나 가득 짊어지고 올라왔다. 보자마자 꼭 안았고,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굴만 봐도 그냥 좋다. 말하는데 힘이 없다. 전에는 괜찮아? 하고 물어보면 무조건 괜찮다고 답했는데 이제는 그냥 솔직히 안 괜찮다고, 기운이 없다 얘기를 한다. 기운이 떨어지는 거야 당연한 걸, 그걸 무어 숨기나 해서다. 기운은 없지만 기분은 좋았다.

우리말로 하면 ‘봄내’라는 뜻의 춘천, 춘천이라는 곳과 평화라는 말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내, 생명의 기운, 따뜻함, 평화…….

진지한 눈빛, 따뜻한 손

오후 네 시가 되어 교실로 내려가 학생들을 만났다. 갈수록 가려지고 있지만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는 전쟁, 전쟁이 아닌 학살, 침략군을 보낸 우리나라, 침략자가 된 우리들, 꺼져가는 듯 하던 파병철회 운동, 새롭게 이어가야 할 전범 민중재판 운동, 대한민국의 김선일과 필리핀의 노동자, 대한민국의 노무현과 필리핀의 아로요, 한미동맹과 노무현 정권……. 이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했을 거다. 평소보다 말을 두 배, 세 배 빠르게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나중에 한 학생에게 들으니 말 하는 게 너무 느리다 한다. 평소에 이야기하는 빠르기였으면 정말 큰일일 뻔 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듯 하다가도 어떤 때는 절로 기운이 났다. 뱃속 저 아래부터 끌어올려지는 기운이라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목소리를 내는 게 힘이 드는구나 하는 게 실제로 느껴졌다. 그래도 마음이 바빠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마음을 타게 하는지 모르겠다, 따로 가닥을 추리지도 못한 채 정리할 것도 없이 이야기들을 쏟아 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눈을 맞추던 학생들은 모두 그 눈빛이 진지했다. 그 눈빛들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이야기를 마칠 때 쯤 많은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민중재판의 발기인이 되겠다는 신청서를 쓰기도 했다. 단식 순례 중 강연이 아니라 다른 때의 강연이었으면 바로 잔디밭이든 어느 술집이든 자리를 옮겨서 함께 뒤풀이라도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잔디밭으로 나가서 선생님들하고 학생들 몇과 함께 둘러앉았는데 김환영 선생님이 그림 수첩을 건네준다. 교실에 있는 동안 교실 앞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더니 그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내 모습을 그린 거였다. 그림 뿐 아니라 내가 하는 얘기들까지 받아 적어 놓았다. 가장 성실하게 강연을 들은 학생은 거기 있었군. 그렇게 그린 그림이 꽤 많다. 역시 그림장이구나. 그림 속 나는 정말 나와 닮은 것 같았다.

춘천에 다 왔다고 전화가 왔고, 곧 멀리 속초에서 오신 김경희 선생님과 탁동철 선생님이 왔다. 그 먼길을 왔다. 한 손에는 그 맛있다는 송천의 떡을 한 봉지 가득 들고 왔다. 내가 있어서 떡을 안 내놓으시나 해서 둘러앉은 자리마다 그 앞으로 떡을 내었다. 정말로 맛이 있어 보였다. 눈으로만 보는데도 벌써 쫄깃한 느낌, 달달한 맛이 입에 느껴졌다. 선생님들이 내 손을 꼭 잡아주시곤 했는데 체온이 떨어져 있어 그런지, 사람 손이 그렇게 따뜻한 줄을 전에는 몰랐던 것 같다. 아마 그건 체온이 떨어진 때문만이 아니라 손잡아주시던 선생님들 마음이 그토록 따뜻했던 거였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고맙고, 행복했다.


그림 - 김환영


헬기 소리, 밥 한 끼

내가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시간 다른 순례단원들은 춘천의 명동 시내와 미군 캠프 앞에서 캠페인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준비된 저녁 대동제 무대. 이 날은 대동제 사흘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날인데 그 저녁 시간을 우리 순례단에게 내주었다. 맨 처음 청와대에서 수사님과 만나 순례를 시작하기까지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 그리고 ‘예기 플라타너스’라는 팀의 퍼포먼스, 별음자리 아저씨의 노래,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과 두 단식자의 인사, 그리고 전범 민중재판 운동을 준비하는 분의 이야기에 이어 다시 별음자리 아저씨의 노래. 예기 플라타너스가 퍼포먼쓰를 할 때 음향으로 헬기소리가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다다다다다다다다. 엊그제 바그다드의 하이파 거리에서 있었다는 아파치 헬기의 기총소사 기사가 떠올랐다. 사고가 나서 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병이 들어 죽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가진 게 없어 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죽이고 있는 이 엄청난 일. 헬기소리는 무서웠다. 학생들의 대동제 마지막 밤 행사는 계속 이어졌지만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와 가까운 곳으로 늦은 저녁을 하러 갔다. 다른 고장에서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저녁을 먹으러 자리를 옮기면 수사님과 나는 먼저 숙소로 가 있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싶었다. 춘천 닭갈비 집. 상추에 닭갈비를 얹고, 양배추도 얹고, 깻잎도 얹고, 고구마도 얹어 한 쌈을 싸 한 상에 앉은 분들 돌아가며 입에 넣어주었다. 쌈을 싸는 거, 아주 재미가 졌다.

요즘 자꾸만 먹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긴 단식에서 내가 배운 것 가운데 가장 크고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먹는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밥 한 끼의 소중함. 예전에도 농활을 가거나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때 상 앞에서 ‘농부 아저씨, 감사합니다’ 따위 기도를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그 때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온 거라 할 수 없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알겠다. 배고프다는 게 뭔지, 한 끼 양식이 어떤 의미인지…….

가게 안에서 쌈을 싸주며 즐겁게 있다가도 잊을 만하면 무대 앞의 헬기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헬기에서 쏘아대던 불꽃, 피를 철철 흘리게 되었을 어느 소년이 떠올랐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 만났던 아이들, 소년들. 아이들과 밥을 먹던 때를 떠올렸다. 양고기는 먹을 수가 없어서 질리도록 먹던 닭고기. 마약에 취한 눈으로 닭다리 하나 가지고 필사적으로 싸움을 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사흘을 굶었다는, 이틀을 굶었다는 아이들. 이라크에서도 쌈을 먹는다. 우리처럼 상추 같은 채소 쌈이 아니라 밀가루를 얇게 구워낸 호베즈로 싸는 쌈. 호베즈를 상추 한 잎만하게 찢은 다음 그 위에 닭고기를 얹고, 언제나 닭고기가 나올 때면 함께 나오는 토마토를 그 위에 얹는다.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고 믿는다. 고리가 되고 있다고 믿는다. 전범 민중재판에도 힘이 붙고 있다. 철군 운동은 이제 다시 힘껏 시작한다.


춘천에서 시흥 (2004년 9월 17일)

오전 일찍부터 움직였다. 승용차 한 대가 함께 움직여서 수사님과 나는 그 뒷자리에 탔다. 솔직히 순례단의 낡은 봉고차를 타고 몇 시간 움직이는 건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덜컹거림이 심하고 앉는 자리가 편치 못한 그 차만 타면 아주 진이 다 빠지곤 했다. 그런데 마침 다른 자동차가 하나 더 있다 하니 속으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시흥까지 세 시간. 봉고차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를 타고 오긴 했지만 진이 다 빠져버린 건 마찬가지였다. 숙소가 있는 신천동 성당에 들어와 차에서 내리는데 내려서 발을 딛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성당 마당에는 벌써 신부님과 수녀님, 샘물 공부방의 이모들이 나와 기다리며 인사를 건네주시는데 억지로 웃으며 인사를 답하려 해도 얼굴이 웃어지지 않고, 우선 차에서 나와 어디 걸터앉을 곳이 없는지 찾아야 했다. 아무튼 차에서만 내리면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끔 힘이 부치곤 한다. 성당의 2층과 3층이 우리 단원들이 쓸 숙소였다. 단원들이 성당에서 준비한 밥을 먹고, 바로 이어서 시장으로 집회를 준비하러 나간 사이에 숙소에서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추스렸다. 네 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집회, 신부님도 눈을 붙이고 계시느라 다른 단원들이 나갈 때 함께 나가지 못했고, 수사님은 네 시 삼십 분이 될 때까지 깨지 못하셨다. 아니, 일부러 깨우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늦어서야 이곳 신천 성당 신부님의 안내로 나머지 셋이 함께 집회장소로 나가게 되었다.

시장 들머리, 평화의 한마당

깜짝 놀랐다. 먼저 보내준 프로그램 표를 보면서도 어떻게 이 많은 준비를 할까 하고 놀라워했는데 실제 가 보고 나니 아주 대단하다는 말 뿐이 안 나왔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그곳 시장의 들머리는 말 그대로 ‘한마당’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 그리고 평화의 한마당. 벌써 그 둘레에는 얼굴에 물감 그림을 그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저마다 그 자리에서 준비한 풍선이며 목걸이 따위를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그 느낌을 떠오르는 대로 늘어놓아 본다면 ‘축제, 잔치, 난장, 자유로움, 해방, 생명력……’ 들이었다. 한 쪽에서는 광목에 밑그림을 그려 놓고 아이들이 붓을 하나씩 들고 그 그림을 함께 색을 입혔고, 또 한 쪽에는 플라스틱을 오려 만든 그림틀, 글자틀을 가지고 역시 물감을 스폰지에 먹여 꾹꾹 눌러서 만드는 스텐실을 한참 하고 있었다. 또 그 옆에서는 길다란 풍선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선생님과 아이들, 또 그 옆에서는 얇은 물감 붓으로 얼굴에 무늬를 그려 넣어주는 교복 입은 아이들. 그 풍경을 하나하나 다 묘사를 하기가 너무 벅차다. 시장 들머리의 바닥에는 아이들마다 모두 하나씩 그렸음직한 그림들로 해서 커다란 바닥그림이 깔려 있었고, 어느 높은 기둥 위에는 ‘총’, ‘을’, ‘내’, ‘려’, ‘라’ 하는 글자가 써 있었다. 너무 멀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종이로 접은 무언가를 붙여서 만든 글자 피켓이라는 건 짐작이 되었다. “이모, 저기에 있는 건 어떻게 한 거예요?”, “저건 우리 중학생 아이들이 종이로 장미를 접어서 그런 장미들을 붙여 만든 거예요.”. 울진에서 저녁마다 군청 앞에서 종이학을 접던, 그래서 그 종이학으로 만든 글자판들이 생각났다.

나는 입이 헤 벌어져 기웃기웃 구경을 다니다가 목걸이를 만들어 파는 아이들 앞에 가서 하나에 오백 원을 주고 목걸이를 샀다. 그리고는 맨 바깥쪽에서 열심히 밑그림 위에 색을 입히는 아이들 곁에서 나도 붓을 들었다. 곰과 고양이, 오리, 개구리, 병아리, 말이 모두 손잡고 길을 가는 그림이다. 그 아래에는 ‘생명 평화’라고 써 있다. 생명 평화는 그렇게 ‘손을 잡는 것’일 것이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 하얀색. 잘은 못해도 열심히 나름껏 물감을 칠했다. 칠하고 있으려니까 지나가던 아이들이 이게 뭐지? 하면서도 붓을 들고 함께 칠을 했다. 한 아이가 문득 나에게 “아저씨, 박기범 아저씨는 언제 와요?” 하고 물었는데 그렇게 물어주니 나를 기다려주는 아이들 마음이 느껴져 환한 웃음이 나왔다.

놀이터와 주먹밥

그 자리를 마련하는데 누구보다 샘물 공부방의 이모 삼촌들과 아이들이 애를 썼다는 건 따로 사정을 몰라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선전물 하나하나가 모두 아이들의 작품이었고, 아이들의 손길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일을 하는 아이들 얼굴이 너무 밝았다. 여전히 걸개에 물감을 입히고 있던 내 자리 쪽으로 솔수펑이 이모가 와서 저녁 일정을 다시 맞추었다. 그런 뒤 나는 이모에게 정말 애 많이 쓰셨다고, 놀랐다고 하면서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시작했는데 샘물 공부방은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한 차례씩 놀이터에 나가 ‘평화놀이터’라 하여 오늘처럼 이렇게 논다고 했다. 물론 오늘처럼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하는 큰 행사를 주마다 한다는 건 아니고, 이 모습보다 훨씬 작겠지만 비슷한 형식, 내용으로 하는 행사를 말이다. 그러면서 이모는 저 걸개그림들도 모두 평화놀이터를 하면서 그린 거라 설명해주었다. 지금 나도 같이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세 번째 것이라고. 그런 얘기를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다른 모임이나 지역에서는 한 번 하기도 엄두를 내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주마다 걸개를 하나씩 만들 정도로 그런 시간을 만들어왔을까?

일정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 저녁 먹을 시간은요? 하고 물었는데 이모가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까 거기에는 김치통 만큼 커다란 통 두 통에 볶음밥이 가득했다. 오늘도 저걸로 주먹밥을 해서 먹을 거라 한다. 얼마나 맛이 있을까? 멀리에서 보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다홍빛 당근이 섞여 있는 볶음밥. 그런데 볶음밥도 볶음밥이었지만 이렇게 신나게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손에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주먹밥이라니? 아마 샘물 공부방에서는 ‘평화놀이터’를 하러 나갈 때마다 그렇게 볶음밥을 해가지고 나가서 주먹밥을 해서 나누어 먹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이들은 그러한 행사나 작품 준비 뿐 아니라 노래와 율동까지 준비해 작은 무대 앞에서 꽃이 되었다. 정말 노래하는 아이들 모습은 꽃밭 같기도 했고, 모두 같은 노랫말을 노래하니 그 모습이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 새들 같기도 했다. 멀리 봉천9동에서 맑은샘물 공부방 아이들이 와서 함께 하기도 했고, 뒤 이어 평화바람의 공연이 이어졌다. 시흥은 이미 다른 곳에서 바람을 불러오기 전에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고 마을 곳곳으로 그 바람을 불게하고 있었다.

그럴 때 평화는 저절로 올 거야.

신부님과 수사님은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먼저 옮겼고 나는 행사가 다 마칠 때까지 있다가 성당으로 돌아왔다. 행사를 마칠 때쯤 해서 바끼통의 아멜리, 강아지풀, saba가 와서 함께 걸어왔다. 갈 때는 차를 타고 나갔는데 걸을 만 할 것 같아서 일부러 걸어가자고 했다. 그런데 걷다 보니 생각보다 길이 멀었다. 힘이 부쳤다. 며칠 전 그러니까 실상사에 머물던 때까지만 해도 이삼십 분은 너끈히 걸어도 몸이 가볍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만 걷는다 싶으면 발자국 떼는 게 힘들다. 겨우 성당에 도착하니 샘물 공부방 아이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에 많이 지나 있었다. 공부방으로 안내하러 나오신 솔수펑이 이모를 따라 철거가 된 골목을 지나 길을 건너고 다시 골목이 좁은 동네로 들어서니 한눈에 공부방으로 보이는 집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어서 가야는 하겠는데 힘은 들지, 솔수펑이 이모도 아이들에게 늦어서 저렇게 다섯 걸음은 앞서서 가고 계신데 나는 도무지 그 걸음을 쫓아갈 수 없으니 자꾸 미안한 마음만 쌓이고 땀만 났다.

그리고 공부방에 다 다다라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솔수펑이 이모가 뒤를 돌아보며 한 마디 귀띔을 해주셨다. 아이들이 뭔가 선물을 준비해 놨을 거예요! 아, 정말! 공부방은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중고등학교 아이들까지 가득 차게 많았고, 모두들 손에 초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천정에는 매달아 놓은 풍선 몇 개. 내가 든 초에 불을 먼저 붙인 뒤에 아이들에게 불을 이어주었다. 하나하나 초마다 불이 붙었고, 이내 공부방에는 오륙십 개의 촛불이 반짝이게 되었다. 그러더니 아이들 몇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처음 듣는 노래인데 힘들어하지 말아요, 꿈은 이룰 수 있어요… 하는 노랫말이 들어가는 아주 고운 노래였다. 초의 끝에 붙은 불빛들이 일렁였고, 아이들 눈동자 속의 불빛이 일렁였다. 아마 내 눈동자에서도 그랬겠지. 고마워, 얘들아. 공부방에 다 들어설 때에는 더는 못 걷겠다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그게 싹 가셨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걸상에 앉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땀을 많이 흘렸지만 기뻐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 우리 뭐든지 새 거가 자꾸만 사고 싶고, 갖고 싶고 그러면 아무 것도 없는 동무를 생각해요. 우리가 모두 조금 더 모자라고, 조금 더 불편하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저절로 평화가 올 거예요. 갖고 싶은 것마다 다 살 때, 먹고 싶은 것마다 다 먹을 때, 편하게 해주는 거마다 다 누리고 싶을 때 그러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니까요…….”

그 맑고 진실한 힘이 싸움으로 이어져야

다니는 곳마다 정말 맑고 진실한 이들과 소중한 만남을 갖고 있다. 허나 그 소중함은 우리끼리 뿌듯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감동을 얻는 소중함이어서는 안 된다. 이 만남들이 진정 소중하려면 그 맑고 진실한 힘이 싸움으로 이어져야 한다. 목숨을 살려내는 싸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싸움. 파병철회, 철군!




[철군 단식 순례] 9월 18일, 나눈 평화, 저 땅의 피흘림
[철군 단식순례] 9월12-13일, 바그다드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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