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0406] 제3차 카이로반전회의와 이집트 정치의 급진화 |
“예루살렘의 해방은 카이로 민중들의 해방에서 시작한다”
김용욱(다함께 기자)
지난 3월 24일～27일까지 이집트 카이로에서 3차 카이로국제반전회의가 열렸다. 이집트인 1천5백 명, 25개국으로부터 온 국제반전활동가 1백60명 이상이 참가했다.
이집트의 ‘알아흐람 위클리’는 “국내 개혁과 국제 쟁점이 결합된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하고 평가했다.
1981년 사다트의 암살 이후 집권한 무바라크 정권은 24년 동안 계엄상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런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이집트와 아랍 국가의 진정한 민주적 변화를 요구하는 활동가 회의가 열렸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최근 조지 W 부시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 민주화’를 떠들었다. 그는 이집트 정부에게 일정한 개혁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2월 중순 무바라크는 대통령 선거에 한 명 이상의 후보가 출마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무바라크 정권은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정권이다. 하지만 미국은 무바라크 정권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통제력을 잃게 될 경우, 아랍 세계에서 자신의 이익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부시의 ‘민주화론’은 미국의 중동 패권 전략의 일부이기 때문에 매우 위선적이다. 부시는 “점령 하에 자유로운 선거가 있을 수 없다”면서 시리아가 레바논에서 즉각 철군하라고 요구했지만, 정작 미군 13만 명이 점령하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정당성없는 선거를 진행했다. 또,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집트 국내 개혁에도 이중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친서방 정당인 알가드당의 총수 아이만 누어가 체포됐을 때 즉각 항의했지만, 지난 수개월간 진행돼 온 ESSO 노동자들과 사란두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한 탄압과 각종 좌파와 무슬림 단체에 대한 억압에는 침묵을 지켜왔다.
미국은 명망가 자본가 집단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미국은 ‘안전한 야당’이 사회운동이 갑작스럽게 폭발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집트 민주화의 진정한 동력은 조지 부시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무바라크는 ‘이집트 개혁을 위한 운동’, 일명 ‘키파야’ 운동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왔다.
이 개혁 운동은 2000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연대 투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등 반제국주의 운동 속에서 탄생했다.
특히, 2003년 3월 21일 약 2만여 명이 참가한 이라크 침략 반대 시위 당시 이집트 경찰이 경찰견을 풀어 시위대를 공격하자, 시위대의 분노는 미국 정부뿐 아니라 이집트 정부에게로 확대됐다.
키파야는 아랍어로 ‘충분하다’, 혹은 사빠띠스타가 주장한 ‘야 바스타(Ya Basta)!’ 즉 ‘이제 그만’이란 뜻이다. 카이로 회의에서 이집트 활동가들은 ‘키파야’가 바로 ‘Ya Basta!’를 번역한 것이라고 말했다.
키파야는 다양한 경향의 반정부 활동가들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운동은 작년 12월에 수년만에 처음으로 무바라크의 퇴진과 아들로의 정권 이양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이런 대중적 저항의 탄생 뒤에는 지난 25년 간 지속된 무바라크의 철권통치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져 온 고통이 있다.
이집트의 가난한 대중들은 ‘인피타(개방)’정책과 함께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고통받아 왔다.
이집트의 실업자 수는 7백5십만 명에 달한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지난 1994년부터 지금까지 약 65만 명의 노동자들이 국유 기업 사유화 속에서 강제퇴직을 당했고, 보통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와 임금 저하로 고통받았다.
이집트 노동 운동은 1980년대 초반 패배를 겪은 후 오랫동안 휴지기를 겪어 왔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이후 투쟁의 수위가 빠른 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하고 있고, 지난 6개월 동안 이전 5년 간 벌어진 파업보다 세 배나 많은 파업이 벌어졌다.
같은 기간,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대지주들이 이집트 국가의 후원을 등에 업고 1952년 토지 개혁으로 잃었던 토지를 농민들로부터 강제로 빼앗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이에 맞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번 카이로회의에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당의 최고 지도자·야당 의원· 공산당 대표·독립 사회주의자·나세르주의자·농민 활동가·노조 활동가 등등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집트의 정치 세력들이 참가했다. 이것은 이집트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특히, 지난 회의 때만 해도 수동적이었던 무슬림형제당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토론에 개입했다.
카이로 회의에 참가한 이집트 좌파들은 정부의 소심한 ‘개혁’에 만족하지 않고,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당장 물러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무바라크 정부가 지난 20년 간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비상계엄·노동조합 통제 등도 함께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사회주의연구소>의 카말 칼릴은 “우리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25년 간의 비상계엄도 지겹고, 감옥의 고문도 지겹고, 가난·실업·부패·폭정·독재도 지겹다”고 말했다.
물론 이집트 대중들은 단순한 선거 개혁일지라도 대환영할 것이고, 이런 정서는 오랜 권위주의적 통치에 비춰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집트에서 투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집트 정부에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이집트 국내의 투쟁이 중동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더 커다란 힘을 실어 줄 것이란 점이다.
카말 칼릴은 “예루살렘의 해방은 카이로 민중들의 해방에서 시작한다”고 말해 가장 커다란 박수와 환호를 받았는 데, 이것은 이번 회의의 정신을 가장 잘 요약해 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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